GCC/사우디

[의료] 정부가 강매(?)하는 민간 의료보험

둘뱅 2010. 1. 27. 20:26

 

(누군가에게는 "내 마음의 안식"이 아닌 "내 돈을 빼내갈..."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의료보험 업체의 브로셔)

 

 

1년에 한 번 회계감사 후 회사에 부과하는 자카트세 (사우디 회사) 혹은 법인 소득세 (외국인 투자회사)를 제외하고는 개인 소득세 규정이 있어도 실제로는 적용하지 않아 국가에서 부과하는 공식적인 세금이 없는 곳으로 알려진 사우디지만, 정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을 걷어갑니다. 가장 만만한 대상이 바로 외국인이죠. 이까마와 워크 퍼밋은 매 1~2년마다 갱신 (1년에 750리얄, 2년에 1,500리얄)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운전 면허증도 소형 면허의 경우 유효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대형 면허는 5년 유지) 면허증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면서 75리얄이던 운전면허증 발급 비용을 400리얄로 급인상하는 조치 (2009년 1월부터)를 취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담이 되는 것은 바로 의료보험입니다. 수익이 자신들에게 다 오는 것도 아닌데 업계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요...

 

그간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한정짓고 있다가 2008년 10월 이후 소형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의무가입을 확대적용시키면서 의료보험이 새로운 부담이 되었습니다. 의료보험 가입 없이는 이까마 연장, 발급의 길을 아예 막아버렸으니까 말이죠. 국가가 이런 제한을 둘 정도면 우리처럼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게 또 웃긴 것이 의료보험은 민간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민간 사업이면 시장에 맡겨두고 가입할 사람만 가입하면 되어야 정상이겠지만, 사우디에서는 정부가 오히려 여권과를 통해 의보 업계와 가입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를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이까마 신규, 혹은 연장  신청자들의 의료보험 가입여부를 확인한 후, 가입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이까마 발급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의보 업계에 왕자들이 얽혀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만...) 사우디인들에 대한 의무 가입은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기에 외국인들이 업계의 물주가 되어버린 셈이죠. 사우디인들은 외국인들처럼 꾸준히 갱신해야 하는 신분증이 없어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네요. 

 

사우디에는 종합보험회사인 Tawuniya (http://www.tawuniya.com.sa/Default_E.aspx), MEDGULF (http://www.medgulf.com/default.aspx) 및 의료보험 전문회사인 Bupa (http://www.bupa.com.sa/en/pages/home.aspx) 등의 대형 업체와 다수의 중소규모 회사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대형 업체일수록 네트워크가 넓고 비싼 대신 가입, 탈퇴 시의 정산도 깔끔하게 하는 반면, 작은 회사일수록 이런 것들이 다 안되는 경우들도 종종 볼 수 있죠.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의료보험 가입은 개인 가입과 회사 단체 가입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제시한 일괄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에 회사별 클래스에 따른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클래스가 높아질수록 비싼만큼 서비스의 질이 좋고, 낮아질수록 싼만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시스템인거죠. (여기서 서비스의 질이란 것은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의 수라던가 해외 진료 시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의 여부, 의보에서 보장해주는 범위나 배상액이 어디까지냐...를 의미하는 겁니다.)

 

의보 가입이 본격화된 직후에는 연령에 상관없이 클래스에 따라 다른 요금이 적용되어 최저에서 최고까지 3~4천 리얄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만, 작년 라마단을 즈음하여서는 살짝 또 바뀌어 클래스 구분에다 연령별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어릴 수록 적게 내고 많을 수록 많이 내는 방식입니다. 높은 클래스를 이용하는 고령자의 경우 정말 많은 돈을 매년 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회사의 경우 가입자 수가 많아지기에 단체 가입 형태로 가입하게 됩니다. 단체 가입은 가입자의 나이가 아닌 가입자 수에 따라 의료보험비가 결정됩니다. 당연히 큰 회사일수록 적게 내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도 일반 가입보다는 싸기 때문에 그야말로 제한된 네트웍에서 혜택을 얻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때마침 네트웍 내에 가능한 범위에서 수술 등의 치료를 받는다면 보험 혜택의 덕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어렵죠. 그렇다고 더 높은 클래스를 가입하기엔 물론 비용이 비싸고, 의료보험에 가입했으면서도 혜택을 못받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니 의료 보험증이라고 생겨봐야 마냥 좋다고는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냥 쌩돈 나가는 것 같으니까요.

 

일단 의보제가 의무화되면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사우디에 장기 체류중인 고령자들입니다.  사우디 정부가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이인 60세인가 65세로 알고 있는 나이 제한을 초과한 분들의 경우엔 가입을 거절당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가입하려면 어차피 몇 천 리얄을 내야만 하고, 그럴 의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시스템 상에 나이 제한 초과로 가입을 거절당하니까요. 대형 업체에서 거절당하는 고령자들을 위해 소형 보험회사들 중에는 가입을 받아주긴 합니다만 찾기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죠....

 

그리고 이까마 연장비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납부해야 하는 의료보험을 바라보는 스폰서, 또는 회사들의 반응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하단 것은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에는 고용인의 의료보험비를 회사가 전부 부담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고용한 외국인 수가 적어 훨씬 비싼 의료보험비를 내야 하는 스폰서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큰 부담이 될 수 밖에요. 그런 경우 의료보험비만, 혹은 부대 비용까지 얹어서 고용인들에게서 되받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의보 의무 가입 전에는 750리얄만 필요하지만, 의보비에 따라 2천 리얄 전후의 비용이 필요하게 되니 누구에게든 무시못할 금액이 되는 것이죠.

 

현재 사우디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험은 GOSI가 있습니다. 사우디인의 경우 신고 급여의 20% (연금 보험료 90%, 근로재해보험료 10%), 외국인의 경우 신고 급여의 2% (근로재해보험료 100%)를 일괄 납부하고 근로 중 상해를 당했을 때 지정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도 이런 식으로 정부가 관리하면 좋을 것 같은데, 사우디 정부는 이를 민간 업계로 떠넘긴 대신 사업보장을 위해 우선적으로 외국인들에게 의보 가입을 의무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아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까마 발급, 연장에 정부가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의료보험 가입을 권장 (이라 쓰고 강매라고 읽는)하게 된 것이죠.

  

이러다보니 잔꾀를 부리는 스폰서들이 많이 생겼나 봅니다. 올 초 여권과에 이까마 연장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내려와 기존에는 1년이나 2년 중 선택할 수 있었던 연장 기간을 1년으로만 통일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까마를 2년 연장하려던 사람들도 결국 1년만 연장할 수 밖에 없었죠. 그 이유는 의료보험비를 매년 내기 귀찮은 일부 스폰서들이 이까마를 처음 만들거나 연장할 때 의보비를 납부한 후 이까마를 2년 연장시키고 난 뒤, 첫번째 해 의보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의보를 재가입하지 않고 이까마 연장기간이 다가올 때까지 미가입 상태로 있다가 연장할 무렵에 다시 가입하는 얌체짓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즉, 의료보험을 격년으로 가입하려다 걸린 것이죠. 이렇게 가입하는 업체들이 늘다 보면 안정적이지 못한 수익원 때문에 의보 업계의 활동에 많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일종의 미국식 의보 시스템 같은 사우디의 의보 시스템이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진 않네요. 지방 소도시에 있다보니 현재 가입된 의료보험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병원은 소도시 전체에 두 개 밖에 없고, 그보다 더 심하게 문제가 생기면 의보에 상관없이 목돈이 들어갈테니 말이죠. 그저 건강하길 바랄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