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북아/요르단

[암만] 파란만장 요르단 여행기 (4) 한 통의 이메일 그리고 사건의 전말...

둘뱅 2011. 9. 10. 01:34

술을 마시고 자기 전 아무 생각없이 열어본 메일함에 와 있던 한 통의 메일은 취하지도 않았지만, 정신이 확 깨기엔 충분했습니다...


(바로 그 문제의 메일!)



일단 보낸이의 주소를 보니 경찰이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Hotmail 계정으로 보내진 메일이었고, 공적으로 보내는 이메일엔 경찰 전용 도메인에서 보내진다고 하니까요. 메일을 확인한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었던 터라 전화를 걸지 않고 알려준 번호로 아침에 연락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날렸더니 5분만에 전화가 옵니다. 자기는 오후 6시부터 일하는데 네 사정이 딱하니 일단 오후 2시에 만나서 주겠다고 합니다. 만나는 장소는 지갑을 잃어버렸던 그 호텔, 가든 호텔 부근에서 말이죠.


아침을 먹고 추가서류를 받으러 가는 대신 신고한 슈메이사니 경찰서로 가서 이 상황을 설명해줍니다. 얘기를 듣더니 경찰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혼자 가지 말고 꼭 먼저 연락하고 가라며 핸드폰 번호를 남겨줍니다. 오후 1시반쯤 약속 장소인 가든 호텔을 향해 떠나면서 약속했던대로 경찰들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일찍와서 주위를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이 경찰들이 와서 거리를 두고 차를 세운채 나와 후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 시쯤 되니 어제 차를 태워줬던 그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하며 나타납니다. 그렇게 만나고 있는 사이 경찰들이 나타나서 그 아저씨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봅니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는 그의 핸드폰을 보니 메일을 보냈던 그 사람의 핸드폰 번호가 눈에 들어오더니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겁니다.... 지금 오고 있는데 5분 정도 뒤면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5분 뒤에 메일을 보냈던 그 남자가 나타나더니 네 지갑이 맞냐며 지갑을 건네줍니다. 지갑을 만져보니 건드린 흔적이 있습니다. 리얄화와 디나르화를 따로 갈라놓았는데 합쳐놓았더군요. 갈라놓으면서 보니 150디나르 정도가 빠진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 외에 신분증과 신용카드는 그대로 지갑 안에 있더군요. 저희 3자가 대면한 순간, 현장에 있던 경찰은 전부 경찰서로 당사자들을 전부 소환했습니다. 신고된 사건의 마무리를 위해서죠. 그리곤 저희 세 사람으로부터 진술서를 개별적으로 받으면서 사건파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개요


1. 등장인물

    둘라 (한국인 관광객), 하마드 (이집트인 가든 호텔 청소원), 람지 (요르단인 가든 호텔 앞 가판대 주인)


2. 사건의 발생

   1) 한국인 관광객인 둘라는 하마드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 조수석에 있던 배낭과 책들을 뒷좌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갑이 떨어졌는데 이를 인식을 못했다.  

   2) 하마드와 그의 친구는 지갑을 발견하곤 자기네들보다 더 잘 찾을 것 같은 가판대 주인 람지에게 주인을 찾아달라며 지갑을 맡겼다. (하지만 그 와중에 150디나르는 빼갔다. 아마도 자기네들에겐 큰 돈이 들어있으니, 조금 빼도 티는 덜날 것 같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안댜...)

   3) 다음날 아침 람지는 둘라가 알 까스르 호텔을 찾고 다녔다는 얘기를 듣고 알 까스르 호텔을 찾아가 내 행적을 물었지만 난 이미 체크아웃을 한 뒤였고, 호텔이 가지고 있는 연락처는 내 이메일 주소 뿐이었다.

   4) 람지는 지갑 속에서 내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서를 찾았다. 그건 바로...


(차를 렌트하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지갑 속에 꽂아놓았던 렌트카 업체 AVIS의 명함이었습니다...)


   5) 람지는 AVIS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면서 내 연락처를 물었고, AVIS에서도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핸드폰 번호는 사우디 핸드폰 번호라 의미가 없기에...


   6) 호텔과 렌트카 업체에서 받은 이메일 주소가 같다는 걸 확인한 람지는 둘라의 이메일로 지갑찾았으니 연락달라는 메일을 보낸다....



조서를 쓰면서 지갑을 주었다는 하마드는 자신에게 혐의가 씌워지지 않도록 자신을 열심히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수차례 있었는데 다 제대로 돌려줬다면서 말이죠...


지갑에서 150 디나르가 빠져나간건 잠깐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잃어버릴 줄 알았던 다른 것들을 다시 찾은 반가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까마와 운전면허를 재발급받으려면 그 이상의 돈을 잃을테니 말이죠. 조서를 마무리하고 이들과 헤어지면서 그래도 감사의 표시로 50디나르를 더 주고야 말았습니다. 핸드폰은 기어코 찾지 못했지만 다 잃어버리는 것보다야 분명 나으니까요...


그렇게 경찰서에서 조서를 마무리하고 상황이 종료되니 벌써 오후 4시. 예상치 못한 소동 속에 3일 휴가 중 절반이 훅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멀리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어제 만났던 선배네 가족과 그 다음날 이라크로 들어간다는 후배와 함께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외국인들이 많이 몰린다는 1서클 주변에 있는 레인보우 거리를 거닐며 평화로움을 맛보면서 여행 2일차를 마무리했습니다. 젯다로 복귀할 때까지의 시간은 하루도 채 안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