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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우디 내무부, 저항을 상징하는 "브이 포 벤데타" 가면 유통금지 결정!

둘뱅 2013. 6. 1. 22:35

(젯다 시내 길거리에서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팔고 있는 소년 판매원. 출처: Susie of Arabia)


사우디 내무장관 무함마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는 인기있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을 상무부 (Ministry of Commerce and Industry)에 명령했다고 아랍뉴스를 포함한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만수르 알 투르키 내무부 대변인은 상무부가 무함마드 내무장관의 지침을 통과시키고 실행에 옮겼다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보도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를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원래 가이 포크스는 1605년 제임스 1세의 종교정책에 불만을 품고 영국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려던 화약음모사건을 일으킨 로마 가톨릭 교도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오래전부터 11월 5일 가이 포크스의 날 의식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괴하게 만든 그의 가면을 사용해왔었습니다. 가면을 기괴하게 만든 이유는 그를 조롱하기 위함이며, 영국 국민들은 국왕의 무사함을 축하하고 다시는 그런 음모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의식을 치룬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유명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영국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가 창안한 디자인으로 1982년 그래픽 노블이 출간되었고 2006년 영화로 각색되어 나오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픽 노블과 영화를 통해 암살에 실패한 얼간이 정도로 조롱당해왔던 가이 포크스의 이미지가 국가권력에 대항한 혁명가이자 무정부주의자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시위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가이 포크스 가면. 출처: DVD Prime)


새롭게 재해석된 가이 포크스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펼치는 시위대들에게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은 2008년 2월 해커그룹 애노니머스 (Anonymous)가 사이언톨로지교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 서로의 신원을 감춰야 할 필요성에서 이를 사용하면서부터 입니다. 시위한다고 모습을 드러내면 더 이상 해커로 활약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 말이죠. 그들의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들을 통해 가이 포크스 가면은 전세계에서 광범위한 저항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면서 국내에서는 물론 전세계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서는 시위대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현지 언론 알메디나지는 사우디 상무부가 왕국 내 지사에 상점과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모든 가이 포크스 모스크를 회수해서 전량 파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사우디 상무부는 모든 수입 및 무역업체에 이 마스크를 수입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랍의 봄과 함께 2011년 2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곤혹을 겪고 있는 사우디의 이웃국가 바레인 역시 바레인 내 가이 포크스 마스크의 유통을 금지시켜 오고 있습니다. 바레인 정부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효율적인 시위 진압을 위한 노하우를 배우고 시위 진압용 최루탄을 수입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무부는 가미 포크스 가면 판금과 관련한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는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영화 "V for Vendetta" 중)


하지만 이러한 내무부의 조치는 전세계적인 반정부 시위의 상징물이 사우디 사회에 슬그머니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사우디 내에서도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아 지난 2011년 3월 11일 "분노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반정부 시위를 꾀하려던 세력들이 있었고, 내무장관 무함마드 왕자는 왕실인사 중 유일하게 미수로 끝나기는 했지만 자살폭탄 테러를 경험해 본 사람이니까요. 바레인처럼 당장 반정부 시위대와 부딪칠 일이 없기는 하지만, 사우디 역시 나라는 부유하지만 가난한 국민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상황에 따라 사우디인들도 반정부 활동에 가담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가이 포크스 가면 등을 통해 그러한 생각들이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테니 말이죠.



참조: Arab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