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담화문을 발표한 후 국왕에서 물러나 새로 국왕에 취임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카타르 국민들의 무바야아(충성맹세)를 TV로 지켜보고 있는 하마드 전 카타르 국왕. 왠지 짠하다.)
사실상 종신제로 운영되고 있는 중동-아랍권 왕정국가에서 최초로 자의에 의해 퇴임한 왕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 (1924년생)이나 쿠웨이트의 사바흐 국왕 (1929년생)과 같은 고령의 통치자가 아닌, GCC국가 통치자 중에서는 가장 어렸던 카타르의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 전 국왕 (1952년생)가 그 주인공입니다. 1995년 6월 27일 아버지를 내쫓고 국왕이 된 그는 공교롭게도 취임한지 17년 363일만에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20년에서 2년 모자른 취임 18주년 기념일을 2일 앞두고 말이죠.
그야말로 이례적이고도 신속한 하마드 전 국왕의 퇴임이 그의 건강문제로 인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의 이복동생이자 전 카타르 수상을 역임하고 (1996년~2007년), 그의 고문역을 지내고 있는 셰이크 압둘라 빈 칼리파 알 싸니는 카타르TV와의 인터뷰에서 "하마드 전 국왕의 건강상태는 좋으며, 지금도 정기적으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부인하면서, 그의 퇴임은 젊은 세대들을 정부 안으로 끌어왔던 3년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즉위 과정과 퇴임 과정을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카타르 프로축구협회의 축하 이미지)
1995년 6월의 하마드 전 왕세자와 2013년 6월의 하마드 전 국왕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 전 왕세자는 칼리파 빈 하마드 알 싸니 전 국왕의 차남으로 1971년 카타르군 중령으로 임관하면서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하여 1977년부터 왕세자 겸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 제네바에서 머물고 있던 6월 27일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카타르 제9대 국왕에 취임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반대세력의 큰 저항없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국방장관과 군사령관을 역임하면서 군부를 장악했고, 가족들의 지지 속에 쿠데타를 성공시키자마자 미국의 로펌을 고용하여 아버지 칼리파 빈 하마드 알 싸니의 해외 은행계좌를 동결시켜 자금줄을 끊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로부터의 역쿠데타까지 차단시키는데 성공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적인 통치는 단순히 군부를 장악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 사실상 준비가 된 상황이었으니까요.
1980년대 초반부터 최고계획위원회 (Supreme Planning Council)을 이끌며 국정계획에 관여해왔던 그는 1992년부터 아버지로부터 일일 국정운영에 대한 권한을 이양받아 실질적인 통치를 해왔기에 국가를 자연스럽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더 보수적이었지만 아버지가 닦아놓은 카타르 근대화의 기반을 바탕으로 재임기간 동안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살려 자원 좀 있는 꼬꼬마 국가에서 역내에서 영향력있는 국가로 탈피시키는데 성공한 것이죠.
그랬던 그가 후계자로 최종 결정하여 왕위를 물려준 이가 영국 샌드허스트 사관학교 동문 후배이기도 한 네째 아들 타밈 빈 하마드 알 싸니 왕세자였습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카타르군 소령에 임관하면서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타밈 국왕은 처음부터 왕실 내에서 하마드 전 국왕의 뒤를 이을 최고의 후보로 선택받지는 못했지만, "강인한 성격"을 바탕으로 결국 왕실 내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주는데 성공하면서 지난 2003년 8월 5일 하마드 전 국왕의 셋째 아들이자 친형인 자심 왕세자가 1996년 10월 22일 지명되면서부터 유지해 오던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그에게 넘겨주면서 왕세자가 되었으며, 결국 아버지로부터 통치권을 물려받아 카타르 제10대 국왕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마드 전 국왕은 자신이 밟아왔던 길 그대로 아들에게 후계자 수업을 시켜놓고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왕세자가 된 이후 타밈은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국방과 경제 요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나갔으며, 2009년 카타르군 총부사령관으로 승진하면서 군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서 국정운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퇴임을 준비하기 시작한 3년전부터 국방, 외교 포트폴리오 기획, 및 중요한 문제에 있어 실질적인 책임을 지게되면서 군부에서의 영향력과 차기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켜 나갔으며, 자신이 취임하기 3년전부터 국정운영 전반에 관여했던 것처럼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결국 왕위를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준비시켜 놨기 때문에 국정운영 기조의 전면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일반적입니다.
하마드 전 국왕이 근대화의 기반이 다져진 국가를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타밈 국왕은 이미 업그레이드된 국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차이랄까요. 하마드 전 국왕은 43세에, 타밈 국왕은 그가 취임했을 때보다 10살이나 어린 33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겠네요.
그리고... 젊디젊은 타밈 빈 하마드 알 싸니 새 국왕
그에게는 사교적이고, 자신만만하며 개방적인 성격이라는 평가와 빈틈없고 사려깊으며, 용의주도한 성격이라는 평가가 공존합니다. 전자의 경우 축구와 테니스 등 경쟁적인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할 정도로 스포츠광이라는 성향과 사관생도로서의 경험이, 후자의 경우 경제, 외교 등 전반에서 입지를 굳혀갈 수 있었던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러한 성향이 반영되어 두드러진 성과를 드러낸 것이 바로 각종 국제대회 유치입니다. 2014년 FINA 수영 월드 챔피언쉽 유치와 2022년 FIFA 카타르 월드컵 유치가 그것이죠. 비록 자신이 IOC회원이면서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는 흠은 있지만요. 3수만에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던 평창처럼, 카타르 역시 하계 올림픽 유치 3수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재수에 실패했을 당시 그래도 첫 도전 당시 지적받았던 약점들을 많이 보완했다는 평가 속에 아시안 게임, 월드컵에 이어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그들의 도전은 유치전을 지휘했던 타밈 왕세자가 국왕이 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지난 2005년 설립된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 투자당국 (Qatar Investment Authority) 이사회를 이끌면서 영국 경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여 바클레이 은행 (Barclays Bank), 해롯드 (Harrod), 세인즈버리즈(Sainsbury's) 등에 많은 지분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더 샤드 (The Shard)에도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는 그는 미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사우디가 장악하고 있던 역내 주도권에 도전하면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우디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정치 분석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오던 국정운영의 큰 틀을 뒤흔들지는 않고 사회기반시설 등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등 지속적인 발전방향을 모색해 나가겠지만, 다소 진보적이고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하마드 전 국왕보다는 좀더 보수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치관 속에 국가 정체성 유지를 최우선시 할 것 같다는 예상과 함께 말이죠. 아버지 하마드보다 좀더 종교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주류금지 등 자신의 종교관에 맞춰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실용적인 통치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2005년과 2009년 두번에 걸쳐 결혼하여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있으며, 그녀들과의 사이에서 3남 3녀의 6남매 (첫번째 부인으로부터 2남 2녀, 두번째 부인으로부터 1남 1녀)를 낳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딴 장남 하마드 빈 타밈 왕자는 2008년생으로 이제 겨우 다섯살입니다.
외교통 하마드 빈 자심 알 싸니 총리가 물러나고 새 국왕의 오랜 우호세력으로 알려진 압둘라 빈 나세르 알 싸니 내무장관을 총리로 임명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슈라 위원회에서 곧 발표하게 될 타밈 새 국왕의 새로운 내각이 어떻게 구성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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