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사회] 리야드에서의 분신자살로 드러난 사우디 내 무국적 아랍인들의 불편한 진실

둘뱅 2013. 6. 29. 22:22

(예전 2001년경 지잔에 살았을 때 청과물 시장에서 봤던 수박장수. 예멘인이었을 거다. 그 당시도 시장 관리인들이 사진을 찍지말라고 제지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5월 리야드에서 한 수박장수가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고 분신자살했었을 때, 이 사건이 튀니지에서처럼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중운동의 시발점이 되지는 못했지만,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처분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확대되는 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주목을 기울이게 만드는데는 충분했습니다. 바로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 사우디에서 사는 국적없는 아랍인들의 난처한 상황을 말이죠. 


무함마드 알 후라이시라는 이름의 수박장수는 지난 5월 15일 리야드에서 스스로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몸에 불을 붙이면서 분신자살했습니다. 마치 아랍의 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전 2010년 12월 튀니지의 행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자포자기하며 행한 분신자살처럼요. 


그의 친척들은 그가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우디 공무원들이 리야드 빈민촌 인근의 거리 구석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그를 제지해왔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죽은 무함마드의 아버지 알리 알 후라이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이 분신을 시도하기 6개월전부터 분신하겠노라고 위협해 왔었으며, 늘어만 가는 빚으로 인한 압박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사우디-예멘 국경지역인 지잔이 고향인 후라이시 가족은 현재 리야드 남부의 빈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그들의 집은 떠돌이 들개들이 부서진 트럭들 사이에서 어슬렁거리는 대추야자 농장과 쓰레기 매립지를 지르는 길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족의 빈곤은 많은 사우디인들과 유사하지만, 상황은 다른 사우디 빈민층들과는 또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랍어로 '무국적',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이란 뜻을 갖고 있는 "비두운 (بدون)"이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분신자살이 튀니지에서와 같은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겠지만요.




(2013년 리야드 남부 빈민촌에 사는 사우디 빈민층의 실태 Lynsey Addario—VII for TIME/ 

보다 많은 사진을 보고싶으신 분은 Rich Nation, Poor People: Saudi Arabia by Lynsey Addario 참조)



철저히 소외받는, 사우디 내 무국적 아랍인들의 현실

사우디의 부를 쫓아 전세계에서 유입되어 들어와 체류증명서가 없이 생활하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처리문제는 리야드가 노동인력 암시장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시급한 현안입니다.


사우디 노동부는 이번주 약 158만명의 외국인들이 지난 4월달부터 시작한 유예기간 내에 자신들의 체류상태를 정정하는데 성공했으며, 약 18만명의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불법체류 사실을 사면받고 출국했다고 밝힌 바 잇습니다. 하지만 비두운의 경우는 다릅니다. 공식적으로 그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으며, 언론들의 관심도 적고 이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의 상황은 이웃 걸프 아랍국가들에서 살고있는 수만명의 비두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웃 국가에 사는 비두운들은 아랍의 봄으로 인한 각성을 통해 현실 개혁을 위한 요구와 무국적 활동가들이 보다 많은 권리를 찾기 위해 활성화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아오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사우디의 비두운은 그야말로 철저히 묻혀진 상황이니까요. 지난 3월 쿠웨이트에서 4000명의 비두운에게 쿠웨이트 시민권을 주기로 한 결정은 사우디 내 비두운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죠.


불법 이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국적 아랍 이주자들 역시 사우디인들에게 주어지는 신분증 (무료 건강관리와 무료 교육 및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이익을 제공해줄 수 있는...)이나, 합법적인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주어지는 이까마와 같은 신분증명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우디 내 대부분의 무국적 외국인들과 달리 비두운은 매 5년마다 갱신해야만 하는 임시 신분증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이들 중 일부는 지난 세기에 현대적 의미의 국경이 획정되고 국가가 형성되던 과정에서 떠돌다보니 국가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유목 부족의 후손들입니다. 나머지는 보다 최근에 옛 국가의 정체성 따위와 상관없이 돈을 쫓아 사우디에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로이터가 접촉을 시도한 사우디 정부 당국자들은 비두운 문제나 후라이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기피했습니다.


사우디 내 무국적 아랍인들에 대한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UN은 전세계에서 사우디로 온 이들이 7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이 수치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우디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우디 인권협회 (National Society for Human Rights)의 칼리드 알파키르 사무총장은 이 문제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라도 비두운 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절차와 체계가 보다 빨리, 적극적으로 정비되어야한다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사우디, 이라크, 쿠웨이트 등지에 넓게 퍼져사는 오나이자 부족 출신의 한 비두운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분 때문에 해외여행도, 운전면허 취득도, 은행구좌 개설이나 주택 소유 및 사업체 설립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비두운들이 살고 있는 리야드 인근의 허름한 나딤 지구에서 살고있는 그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실명으로 보도되었다가 일자리를 찾거나 정부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자신의 시도가 위태로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죠. 그의 친척들은 그들의 자산을 자신의 명의로 등록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우디 친구들이나 협회의 명의를 빌어 등록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 사우디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우디 국적을 취득했으나 행정처리 오류로 국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후라이시 가족의 비극

후라이시 가족은 10여년 전 사우디 국적을 취득한 남부 지잔 지역에 사는 큰 부족의 일부라고 이야기합니다.


허리춤에 단검을 찬 전통적인 예멘 및 사우디 남부 복장을 한 죽은 무함마드의 아버지 알리 알 후라이시는 그가 한번 사우디 국민으로 공식적으로 등록했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의 옛 사우디 신분증과 운전면허증 사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신분증들은 그가 1950년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사우디 신분증 없이는 일조차 구할 수 없지만, 자신이 한때 사우디 시민이었고 군에도 복무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후라이시 가족의 아흐메드 알라쉬드 변호사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은 후라이시 부족은 언제나 예멘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들의 상태를 정정해달라며 수년간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오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서류처리가 미숙했었을 그 당시 제때 갱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를 입증할만한 기록이나 서류가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이야 전산으로 잡아주니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요.


죽은 수박장수 무함마드 알 후라이시의 친척들은 로이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늘어만 가는 빚과 그의 무국적 상태로 인한 분노와 좌절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생전 충돌과정에서 지방 공무원들은 그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그의 신분증명서와 심지어는 차량까지 압수해갔다고 그의 아버지가 이야기했습니다.


전동료이자 친척인 34세의 무함마드 알리 하마키씨는 무함마드 알 후라이시가 스스로 분신자살하기 전에 짧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지방 공무원들과 또다른 논쟁 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가 본 것은 분신자살 후 죽어가는 수박장수가 앰뷸런스에 실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의 핸드폰에 찍혀있던 사진은 수박이 높게 쌓여있고 측면에 분신으로 인해 그을려진 무함마드 알 후라이시의 픽업 트럭이었습니다.


후라이시 식구들이 찍은 두 장의 사진은 의료장비에 둘러쌓인채 그 다음날 사망했던 병원침대 위에서 누워있던 붕대를 감고 얼굴을 가로지르는 화상자국이 선명한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분신자살이 일어난 현장에서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길모퉁이에서는 또다른 예멘 남자가 자신의 픽업트럭을 정차시킨 채 과일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일주일 전 이곳에서 일어난 분신자살 사건을 아냐고 묻자 그는 놀란듯 고개를 젓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수박이 쌓여있는 자신의 차로 되돌아갔습니다.



참조: "Immolation In Riyadh Exposes Plight Of Arab Stateless In Saudi Arabia" (Gulf Business/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