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종교와 생활이 분리된 체계가 아니라, 종교와 생활이 합일(종교=생활)되는 신앙체계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속에는 단순한 신앙 뿐만이 아닌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면이 녹아들어가 있죠... 이슬람이 추구했던 이상은 “움마”라 불리우는 이슬람공동체 안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격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일신 알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그런 세상을 말이죠...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사회주의 국가와 같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가치관 속에서 불로소득은 인정하지 않고 노력을 해서 번 돈을 가난하고 노약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게 이슬람식 경제의 중심 이념 중 하나입니다. 이는 무슬림이 반드시 지켜야 할 5개의 신앙 기둥 중 “희사(자카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참고로, 5개의 신앙 기둥은 신은 유일신 알라 밖에 없으며,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이다(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수룰라)임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샤하다)”,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드리는 “예배(쌀라)”, 기독교의 십일조와 같이 연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희사(자카트)”, 라마단달(이슬람력 9월) 한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의 고통을 체감하면서 이해하고, 밤이 되면 음식을 베풀어준 유일신 알라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를 즐기는 한달 간의 “단식(싸움)”, 건강한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지켜야 할 의무인 “성지 순례(핫지)”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바로 “희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에 나와있는 “싸딕!! 캄싸 리얄!!”은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여보게 친구!! 5리얄만 줘.”라는 뜻입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시장 주위에서 물건들을 사고 나올 때, 은행에 볼일 보러 들어가거나 나올 때 어디선가 나타난 너저분하게 생긴 옷을 입은 꼬마(여자애들도 물론...)들이 달라 붙으면서 하는 소리죠... 혹시나 싶어서 1리얄이라도 주기 시작하면, 주위에 있던 모든 놈들이 다 몰려오기도 합니다...
“싸딕”이란 말은 문자적 의미로는 친구(friend)라는 뜻인데, 막상 이곳에서 생활해 보면 이름이나 호칭을 모르는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조그만 꼬마애가 처음보는 어른들 앞에서도 싸딕, 어디 일보러 갔다가 모르는 사람들을 부를 때도 싸딕, 누군가를 부를 때도 싸딕... 특별히 친하지 않더라도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들 쓰는 표현인 셈이죠... 싸딕의 단계를 넘어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는 “하비-비(내 연인/친구)”, 또는 “아키-(내 형제)” 등을 쓰기도 합니다... 이 정도 관계가 되면 보통 인사가 뺨을 부데끼면서 하게 되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슬람은 공산주의적 경제체계를 꿈꿔왔던 종교이기도 합니다. “부자가 빈자를 도와야 한다.”는 기본적인 복지 개념을 같고 있거든요... 이 개념에 따라 5개의 신앙 기둥 중에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베푼다는 “자카트”와 굶주린 자의 고통을 공유한다는 “싸움(단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 테구요... 오늘날 사회주의의 몰락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이 꿈꿔왔던 종교적인 이상-이슬람 공동체(움마)의 실현-은 당대에도 유지시킬 수 없었답니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이슬람도, 사회주의도 간과한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입니다... “욕망”이라고 하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그 힘을 유지시켜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종교체계나 사회체계로 묵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이슬람 태동 당시에 형성되었던 이슬람 공동체도 인간의 권력욕에 의해 분열되어 버렸고, 북한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지배욕이 체제를 개인 신격화로 왜곡시켜 버리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이는 입증됩니다. 이렇듯이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다는 기본 정신은 이슬람 속에서는 아직까지도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답니다...
이슬람에서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보는 것이 가난한 자, 노약한 자, 여행자들입니다... 지금이야 상황이 다르겠지만, 라마단을 전후한 명절 기간에 “자카트”를 내는 것 외에도 지방 유지가 집 앞에 거대한 잔치상을 차려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겼다고 하며, 오늘날도 배낭하나 메고 아랍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식당 주변에서 여행객을 보고 같이 나눠먹자고 부르는 아랍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뭐... 혼자먹기엔 양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요... ^^ 이것도 잘 사용하면, 밥값을 크게 줄일 수도...) 그런 걸 생각할 필요도 없이 허름한 아랍식당에서 밥을 먹다보면 거렁뱅이 꼬마들이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몰려들어서 눈치를 주는 경험도 종종 하게 되기도 하구요... 심한 놈들은 먹고 있는 밥 뺏어먹기 시작하고, 좀 착한 놈들 같으면 밥 다 먹기를 기다려서 남는 밥을 돌려가며 먹기도 하죠... 이럴 경우 사람들이 이들을 크게 내치지는 않는 편인데, 이를 통해 서로간의 자기 만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죠... 밥을 먹던 사람은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고 하는 자부심을, 뺏어 먹는 놈들은 배를 채웠다는 포만감을 말이죠... 이러한 베푸는 정신은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주 부자인 사람들보다는 평범하게, 혹은 약간 그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잘 지키는 듯 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요...
몇년전 사우디의 무수히 많은 왕자들 중 하나인 파하드 이븐 살만이 심장마비로 서거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슬프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왕자들과 달리 자신이 갖고 있는 돈과 지위를 가난하고 아픈 자들에게 소리소문 없이 베풀어 쓰는데 조금도 인색함이 없던, 우리식으로 친다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행했던 휴머니스트였다고 하더군요... 그에 대한 일화 하나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되더군요... 그가 동부지방의 주지사로 있던 어느날 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어떤 가난한 청년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그때 그에게는 당장 그 청년을 도와줄 수 있는 1리얄의 현금도 주머니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그 청년에게 자신이 새로 뽑은지 얼마 안되는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 차(최소한 10만 리얄-약 3,500만원-은 넘었을... 참고로, 사우디서는 10만 리얄 이상의 승용차들은 최고급 차량에 들어간답니다...) 열쇠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 열쇠가 내일 아침에 너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라면서 말이죠...
이러한 이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거지애들을 만나는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돈을 조금 주더라도 왠지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얘네들은 (거지 주제에...)돈을 구걸하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요구하거든요... “너 나보다 잘살지? 그러니까 조금 줘도 상관 없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러한 가치관은 근로의욕이 생기도록 하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돈을 받아오고 남이 먹다남긴 밥을 먹는데 익숙해지다보니 굳이 일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든요... 그러다보면 가난의 악순환만 되풀이 되고... 그런 탓인지 아랍국가들에서는 중산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답니다... 극소수의 최고 부유층과 절반을 넘는 다수의 극빈층이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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