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의료] 사우디 촌병원에서 맹장수술 체험기

둘뱅 2005. 12. 18. 01:03

   제목이 쬐금 끔찍하긴 한데... 다행히도 제 얘긴 아니고 예전 사우디 현장에서 일하셨던 어떤 아저씨의 이야깁니당.. 그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 평생 못해볼 경험도 해봐서 그런가.. 몇 년 전 이야긴데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어느날 갑자기 현장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음당... 아랫배 주위가 전체적으로 살살 아프다면서 말이죠... 워낙에 꾀병환자들을 많이 봐왔던 터라 심드렁해진 탓에 누군가가 아프단 소리만 해도 꾀병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별 대수롭게 여기질 않았었죠... “오늘도 또 가라 환자가 나타났군...” 이러면서 말이죠... 그러던 와중에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길래 점심을 먹고 동네 병원 응급실로 갔더랬죠... 뭐... 응급실이란게... 응급조치만 취해주니까... 약을 몇 개 좀 주더군요... 뭐.. 별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그냥 캠프로 돌아왔죠... 그러다가 다시 몇시간이 지나서 저녁을 먹고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등 통증을 호소해서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갔음당... 사진 찍어본다고 일으켜 세워봤는데도 그냥 쓰러져 버리더군요... 그렇게 상황을 지켜보더니 의사는 치료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내국인 전용의 최상급 병원인 King Fahd 병원으로 응급후송시키겠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King Fahd 병원은 왕립 병원인데, 무료로 진료를 해주는 국립병원 중 최고의 시설을 갖춘 병원이랍니다... 회사 반경 70km 이내에 유일하게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갖춘 곳이기도 하구요... 나름대로 최신 의료 설비가 다 갖춰져 있죠... 그러나 한가지 나쁜 점은 내국인들이 이용하는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외국인이 사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하위 병원에서 반드시 상급 병원으로의 이송 서류를 받아야 하는데, 외국인에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잘 보내주질 않거든요... 그 전에도 전주에서 떨어져 팔을 크게 다친 인도인 직원이 있었는데, 깁스가 잘못 돼서 손가락이 거의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하급 병원에서 책임회피만 할 뿐, 이송을 시켜주지 않아서 결국엔 더 치료를 못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거든요...

   어쨌거나... 의사는 때마침 한국인 직원처럼 쓰러져서 꼼짝못하던 불법 체류 예멘인과 함께 King Fahd로 이송시키기로 결정을 내리고는 앰뷸런스를 불렀습니다... 그 불법 체류 예멘인은 경찰로부터 조서를 받아서 서류를 만들더군요... 그렇게 1시간인가를 기다렸더니 앰뷸런스가 오더군요... 종종 보아오던 최신식이 아니라 침대도 하나밖에 없는 허름한 차가 말이죠... 그 침대도 불법 체류 예멘인 몫으로 떨어지고, 불편한 곳에서 엉거주춤하고 갈 상황이었답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지라 결국 병원측으로부터 협조공문을 받아 제가 차를 몰고 병원에 가서 서류를 접수시켰죠... 그때까지도 그 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의사가 사진을 찍게하고는 링겔주사를 놔주더군요... 그러다가 사진을 보더니 신장쪽이 이상한 것 같은데... 별건 아니라면서 이상하면 다시 와보라고는 약 하나 주고 맙디다... 그리고는 새벽4시까지 병원에 있다가... 그냥 돌아오고야 말았답니다... 그리고는 대충 정리하고 5시쯤 눈을 붙였죠...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답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10시쯤인가 사람들이 절 깨우더군요... 그분이 너무 아파서 꼼짝을 못하니 다시 병원엘 가야한다면서 말이죠.... 으휴.... (속으로는 짜증이 이빠이였지만...) 일은 일인지라... 걍... 다시 갔음당... 전날까지만 해도 배 전체가 아프다고 하더니... 콕 찍어서 아픈데를 얘기하면서 허리를 쓰지 못하더군요... 웅... 뭔가 심각하긴 한가보다 생각했죠... 그리고는 병원에 다시 갔더니 병원에선 다덜 황당해하더군요... 기껏 가장 좋은 병원으로 보내줬더니 하루도 안되서 왜 다시 돌아왔냐구 말이죠... 뭐.. 그 병원서 별로 심각하게 얘기하질 않더라... 그랬더니.. 허탈해들 하더군요... 그게 모야?? 이러는 투로 말이죠... 어쨌거나 다시 환자상태를 체크해 보더니... 갑자기 병명이 바뀌더군요.... 급성맹장이라는 겁니다...!!! 지금 수술받지 않으면 환자상태가 위험하니까 당장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뭐.. 여기가 의심쩍으면 사설 병원에 가서 받아도 되지만 잘 생각하라면서... 시설 괜찮은 사설병원은 현장에서 한시간은 족히 가야 있기 때문에 망설여지더군요...
 
   회사로 돌아와서 소장한테 보고했더니 상황이 급하니 일단은 이 병원서 수술받게 하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갔더니... 회사 이름으로 수술 요청서를 준비해서 병원장 허락을 받지 않으면 수술해줄 수 없다고 하데요... 상황은 심각하다면서요... 웅...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병원장 앞으로 수술 요청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랍어 의학용어도 낯선데다 급하게 쓰려고 하니 더 안 써지더군요... 걍 사전 뒤져가면서 요청서를 만들어 병원으로 가져갔습니다... 겨우 서류를 접수시키고 수술 준비에 들어가더군요... 병실을 잡아주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히더니 간호사(물론 남자...)가 저보고 매점에서 면도기를 몇 개 사오라고 하데요... 그래서 사 가지고 왔더니, 간호사가 저한테 하는 말이........... “거기 주변 털 좀 밀어내....”라고 하더군요!!!!! 뜨아~~~~~!!!! 하다못해 제 것도 밀어본 적이 없는데... 황당하기도 하면서 쑥스럽기도 하구 그렇더군요... 뭐.. 상황이 상황인만큼 열심히 밀어대기 시작했음당... 그 직원분도 자기 털을 서툰 손길로 열심히 밀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픈 와중에도 황당하게 쳐다보구 있었구요...(결국 본인은 그걸 기억못했지만요...) 보다 못해 간호사가 능숙한 손길로 밀더군요...(우쒸... 그렇게 잘 밀면서 왜 나한테 부탁해...ㅠㅠ) 뭐.. 이런 황당한 경험을 겪게 하더니 수술실로 결국 들어가더군요....

   금방 끝날 줄만 알았던 수술은 무려 네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의사는 저에게 흉측하게 생긴 물건을 보여주더니 이걸 꺼냈다고 하면서 맹장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고... 조금만 늦었어도 환자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뻔했다면서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위험했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데요...) 그리고는 일주일 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답니다... 통원치료 처방을 내려주면서 말이죠...

   그리고.... 통증이 가라앉질 않아 한달 후 한국에 귀국했는데, 의사들이 어떤 놈이 이렇게 무식하게 갈라놨냐며 황당해하더라는군요... (한 20여센치 정도 가른 자국이 남아있었으니...) 여튼 겉은 문제가 없었는데, 안쪽이 곪아 터져 결국 그분은 또 수술을 받고 하루 두 번씩 통원치료를 받고야 완쾌할 수 있었답니다... 내 평생 거시기 털을 밀어볼 일이 또 있으려나.....ㅋㅋ